스케치

베개

종이비누 2022. 8. 19. 17:53

꽃피는 날에는

꽃 따라 울긋불긋 마음도 바빴어요

찬물은 또

왜 그리 당기던지요

그땐 다 그런 걸까요

팔랑팔랑 웃음마저 그늘도 없이

바람 부는 날에는

바람 따라 여기저기 눈도 많이 흘렸고요

아직까지 눈동자 까만 건

그때 너무 많이 흙 묻은 탓이겠죠

신발끈 모아 무지개도 걸었어요

부은 맨발을 씻는 저녁마다

숲 냄새 자욱한 골 안개가 가슴팍을 쓸고 갔어요

초록은 동색이라고

당신도 나와 같으리라고

말없이도 들렸죠

몇 번 치과를 다녀오는 동안

의자에 앉은 시간이 흰옷과 검은 옷을 바꿔 입는 사이

놀빛은 사라지고

까맣게 손때 전 창틀만 보이더니

참,

찬물이 싫어져요

바람이 성가셔요

풀잎은 나뭇잎과 색이 다르고요

운동화보다 먼지가 더 하얗네요

 

당신과 나  이제 밤마다

서로 베개만 끌어 안아요

 

몸 길을 눈길로만 덮어도 잠만 잘 자요

 

밤새 베개가 푹신한 건

아직 남아있는 말랑한 꿈 몇,

눈뜨도록

머리맡 지키는 까닭이겠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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