맘에 드는 시

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

종이비누 2022. 12. 14. 10:32

- 어머니(김상순)가 들려주시는 말씀을 아들(홍정욱)이 옮겨 적은 글이다 -

세수 남 보라고 씻는가?

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싶고

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기

사람 마음이다.

그기 얼마나 가겠노만은

날마다 새 날로 살라꼬

아침마다

낯도 씻고 그런 거 아이가.

안 그러면

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낯을

왜 만날 씻겠노?

고추 모종은

아카시 핀 뒤에 심어야 된다.

배꽃 필 때

한 번은 더 추위가 있다.

뻐꾸기가 처음 울고

세 장날이 지나야

풋보리라도 베서 먹을 수 있는데

처서 지나면

솔나무 밑이 훤한다 안 카더나.

그래서

처서 전에 오는 비는 약비고,

처섯비는

사방 십리에 천 석을

까먹는다 안 카나.

나락이 피기 전에

비가 쫌 와얄 낀데

들깨는 해 뜨기 전에 털어야

꼬타리가 안 뿌사지서 일이 수월코,

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

꼬타리가 벌어져서 잘 털린다.

그나저나

무신 일이든 살펴봐 감서 해야 한다.

까치가 집 짓는 나무는

베는 기 아니다.

뭐든지 밉다가 곱다가 하제.

밉다고 다 없애면

시상에 뭐가 남겠노?

낫이나 톱 들었다고

살아 있는 나무를 함부로 찍어 대면

나무가 앙 갚음하고

괭이나 삽 들었다고

막심으로 땅을 찍으면

땅도 가만히 있지 않는 기다.

세상에 씰데 없는 말은 있어도

씰데없는 사람은 없는 기다.

하매. 나뭇가지를 봐라.

곧은 건 괭이자루,

휘어진 건 톱자루,

갈라진 건 멍에,

벌어진 건 지게,

약한 건 빗자루,

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.

나무도 큰 넘이 있고

작은 넘이 있는 것이나,

여문 넘이나 무른 기

다 이유가 있는 기다.

사람도 한가지다.

생각해 봐라.

다 글로 잘나면

농사는 누가 짓고,

변소는 누가 푸노?

밥 하는 놈 있고

묵는 놈 있듯이,

말 잘 하는 놈 있고

힘 잘 쓰는 놈 있고,

헛간 짓는 사람 있고

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,

돼지 잡는 사람,

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

다 있어야 하는 기다.

하나라도 없어 봐라.

그 동네가 잘 되겠나.

내 살아보니 짜달시리

잘난 넘도 못난 넘도 없더라

하기사 다 지나고 보니까

배우나 못 배우나

별 다른 게 없더라.

사람이 살고 지난 자리는,

사람마다

손 쓰고 마음 내기 나름이지

많이 배운 것과는

상관이 없는 갑더라.

거둬감서 산 사람은

지난 자리도 따시고,

모질게 거둬들기만 한사람은

그 사람이 죽고 없어도

까시가 돋니라.

우짜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

도와 감서 살아라 캐라.

다른 사람 눈에 눈물 빼고

득 본다 싶어도

끝을 맞춰 보면 별 거 없니라.

누구나 눈은 앞에 달렸고,

팔다리는 두개라도

입은 한개니까

사람이 욕심내 봐야

거기서 거기더라.

갈 때는 두손 두발 다 비었고.

말 못하는 나무나 짐승에게

베푸는 것도

우선 보기에는 어리석다 해도

길게 보면 득이라.

모든 게 제 각각,

베풀면 베푼대로 받고,

해치면 해친 대로 받고 산지라

하매 사람한테야 말해서 뭐하겠노?

내사 이미 이리 살았지만

너그는 우짜든지

눈 똑바로 뜨고 단디 살펴서,

마르고 다져진 땅만 밟고 살거라이.

개가 더버도 털 없이 못 살고,

뱀이 춥다꼬 옷 입고 못 사는 기다.

사람이 한 번 나면,

아아는 두 번 되고

어른은 한 번 된다더니,

어른은 되지도 못하고

아아만 또 됐다.

인자 너그 아아들 타던 유모차에

손을 짚어야 걷는다.

세상에 수월한 일이 어디에 있나

하다 보면 손에 익고 또 몸에 익고

그러면 그렇게 용기가 생기는 게지

그렇게 사는 게지~

 

 

             #

어머니의 구술을 현직 교사인 아들이 받아 적은 시를 묶어서 낸 책

"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"

 

지혜란 머리속에 들어 있는게 아니라

가슴에서 늘 수시로 뿜어져 나오는 저 더운 호흡 같은

따스함이여야 하지 않을까......

 

여러번 읽어 본다

 

유난히 커피가 맛있는 아침이다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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